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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필수 여행코스] 진주성떠나자! 국내 여행 2013. 9. 23. 17:48반응형
[진주 필수 여행코스] 진주성
원래의 타이틀은 [진주 가볼만한 곳]이였다가 이건 아닌거 같아서 [진주 필수 여행코스]로 변경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진주에서 진주성과 그 안에 있는 촉석루를 안보고 관광을 이야기할 수 없을만큼의 입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여행코스입니다.
진주성은 한국인이 꼭 가봐야할 관광지 100선의 현재 실시간 순위 7위에 현재 올라와 있으며, CNN이 선정한 한국 관광명소 50선에도 올라가있는 관광지에도 이름을 올라가 있는 국내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입니다.
[진주 관광] 다른 글 보기
진주성이란?
사적 : 제 118호
소재지 :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은 외적을 막기 위하여 삼국 시대부터 조성한 성으로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유서 깊은 곳이다. 고려 말 우왕 5년(1379년)에 진주 목사 김중광이 왜구의 잦은 침범에 대비하여 본래 토성이던 것을 석성으로 고쳐 쌓았으며, 인진왜란 직후에는 성의 중앙에 남북으로 내성을 쌓았다.
선조 25년(1592년) 10월 왜군 2만여명이 침략해 오자 김시민 장군이 이끄는 3천 8백여명의 군사와 성민이 힘을 합쳐 물리쳤으니 이것이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이다. 이듬해 6월에는 왜군 10만여 명이 다시 침략했고, 민간인과 관료, 군인 등 7만여 명이 맞서 싸우다 모두 순절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1972년에는 촉석문을 복원하였고, 1975년에는 일제 강점기에 허물어졌던 서쪽 외성의 일부와 내성의 성곽을 복원하였다. 1979년부터는 성 안과 밖의 민가를 모두 철거하는 등 진주성 정화 사업을 시작하여 2002년에 공북문 복원 공사를 마지막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성곽의 둘레는 1,760m이고 높이는 5~8m 이며 성안에는 촉석루, 의기사, 영남포정사, 북장대, 창렬사, 호국사, 서장대, 임진대첩계사순의단, 국립 진주 박물관 등이 있다.
[출처 : 진주성 입구 관광안내 표지판]
우리 나라의 역사에서 일본은 정말 빠질 수 없는 악역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 다녀온 대부분은 여행지에서의 역사적 유물은 거의 임진왜란, 일제 시대등에 훼손되고 없어지고 한것들이 너무 많이 보입니다.. 관심없이 봤을 때는 크게 와닿지는 않았으나 관심을 가지고보니 여러가지가 눈에 보이니 속에서 열불이 납니다.
1979년 민가 철거전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과거 신문 기사등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논개 영정에 대한 과거 논쟁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다음 포스팅을 할 촉석루와 의기사에서 이야기해 보도록 하려합니다.
촉석문에는 잡상 또는 어처구니라고 불리는 장식품이 눈길을 끌며, 아직 많은 성들을 본것은 아니지만 왠지 느낌이 매우 견고해 보이는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6배 가량 많은 왜군 2만여명을 막아냈다니 이 성벽에 얼마나 많은 피가 흘러내렸을지 가히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진주성에서 보이는 시내의 모습입니다. 어느 도시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모습 한 켠에 진주성이 이렇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진주의 대표적인 축제 유등 축제도 진주성과 만경동의 남강둔치에서 진행됩니다.
유등 축제를 살펴보다보니 얼마 후에 시작되는것을 알았습니다. 그 시기에 맞춰서 진주 투어를 다녀오는 것도 꽤 재미있는 일이 될것입니다.
2013 진주남강 유등축제
기간 : 2013. 10. 1 ~ 10. 13 (13일간)
장소 : 진주 남강 일원, 진주성 내
주최/주관 : 진주시, 진주 문화예술재단 / 진주 남강유등 축제제전 위원회
쌍충사적비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 3호
소재지 :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이 비에는 임진왜란때 의병을 모아 싸우다가 전사한 제말장군과 그의 조카 제홍록의 공을 새겼다. 제말 장군은 징비록에 경상도 고성사람으로 의병을 모아 활약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웅천, 김해, 의령 등지에서 왜적과 싸워 전공을 세워 곽재우 장군과 함께 그 공적이 조정에 알려져 성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성주 싸움에서 전사했다. 조카 제홍록은 숙부를 따라 공을 세운 후, 이순신 장군 휘하에 있다가 정유재란때 전사하였다.
정조 16년(1892년) 왕은 이들의 충의를 기리어 이조판서 서유린에 명하여 비문을 지어 쌍충각을 촉석루 옆에 세웠다.
일제때 일본관헌들에 의해 비각이 헐리고 비가 방치되었던 것을 1961년 지금 자리에 다시 옮겨 세웠다.
진주성 내부는 녹색의 잔디 조성이 정말 잘되어 있습니다. 나무나 기타 여럿의 배치도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을만큼의 공간을 두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공원에서 시야를 가릴만한게 없으니 더운 여름날이였음에도 어쩐일인지 시원한 느낌을 조금 받았습니다. 그러나 뜨거운 햇살은 그 잠깐의 시원함을 멀리 내쫓아버립니다.... 그늘이 없습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버리는 세상의 한가지 이치를 새삼 느낍니다. 그러나 날씨가 선선해지는 지금의 날씨에 진주성에서 바람을 맞으며 주말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면 정말 좋을거 같습니다.
공북문과 김시민 장군 동상입니다. 제가 진주성을 들어간 입구가 촉석문이라 그 곳이 정문으로 생각했으나, 위치상이나 나중에 사진으로나 공북문이 정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만 보통 정문부터 소개 순서가 정해짐을 본다면 촉석루쪽이 유력해보이기도 하는..... 뭐 복잡해서 그냥 여기까지 생각하고 맙니다. 정문이 아니면 어떠하리, 내가 가는 문이 정문이지~ 머 이딴 식으로 말입니다.
멀리 영남포정사가 보입니다. 과거 1925년도 전에는 경남도청이 이 곳 진주성 내부에 있었다고 합니다. 영남포정사는 도청이 부산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도청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다고하니 진주의 지리적 위치와 중요성이 얼마나 컸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경절사의 담벼락입니다.
사실 입구가 성 외곽쪽을 돌고있어서 입구가 반대편이라 들어가보지 못했습니다. 지도를 안살펴본게 이렇게 아쉬움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다음에 다시 진주성을 가게되면 꼭 가봐야겠습니다. 하여튼~ 경절사는 고려 시절 거란에 대항하다 순절한 하공진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곳이라고 합니다. 경절사라는 이름은 그래서 '정절을 떠받든다'라는 의미에서 지어지게 되었습니다.
[용다리 전설]
지금의 동성동 212-1번지(삼성화재) 부근에는 예전에 용머리가 양쪽으로 붙어있는 돌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이 용다리에는 슬픈 사랑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때는 고려 초 진주의 한 마을 군수 이씨에게 딸이 셋 있었다. 그 중 둘째 딸은 불행히도 출가하자 마자 남편이 죽어 친정으로 돌아와 지내고 있었다.
군수의 집 머슴 돌쇠는 이때부터 아씨를 사모하게 되었고 아씨 역시 돌쇠의 성실하고 충직한 모습에 마음이 끌리게 되었다. 그러나 신분상의 차이로 인해 서로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했으며, 둘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그러다 아씨는 상사병으로 그만 목숨을 잃게 되었고, 돌쇠는 아씨를 장사지내러 가는 도중 용다리 위에서 무심결에 도랑물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마치 죽은 아씨처럼 보여 "아씨"하고 소리치다가 그만 미쳐버리고 말았다.
이후, 이 군수는 딸을 잃은 이 곳을 떠나려고 막 용다리를 건너가고 있었는 뒤따라 오던 돌쇠가 보이지 않아 주변을 찾아보니 이미 돌쇠는 다리 옆 고목에서 목을 맨 상태였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조용하던 용다리 밑 개천에서 수 천마리나 될 듯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왔는데 이는 마치 죽은 돌쇠가 우는 소리와 같았다.
그 뒤부터 용다리 밑에는 진주에서 개구리가 가장 많이 모여 울게 되었다.
짝을 지은 남녀나 부부가 지나가면 울음이 끊겼으며, 상사병에 걸린 사람이 용다리를 두번 왔다 갔다하면 씻은듯이 병이 나았다고 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돌쇠가 이루지 못한 사랑을 남에게라도 이루게 하려는 돌쇠의 지성이라고들 말하고 있다.
6.25전까지 돌쇠가 목매어 죽은 고목에 아들을 원하던 사람들은 한식에 한번씩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용다리의 흔적만이 진주성 안에 남아있다.
북장대의 모습. 이 여행을 다녀오기 전에 교육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올라갈 수 있는 정자나 건물은 올라가 보아라, 그 당시의 그들이 보았던 시선으로 사방을 돌아보자.. 그래서 보통 아래에서 전경을 찍거나 현판, 그리고 내부 천장등의 구조들을 찍었던 저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닌 위에서의 풍경을 담아보기 시작한 사진의 첫 장입니다. 이렇게보면 참으로 평화로운 성으로 북장대의 역활이 전망대로 보이지만, 그 당시에는 진남루라 불리며 임진왜란 당시에 격전에 의해 불타없어졌던 건물중에 하나입니다. 지금의 이 북장대는 1617년에 중건되었고 1964년에 중수한 것입니다.
진주성에는 총 3개의 매표소가 있는데 이 곳이 가장 작은 샛길같은 길입니다.
내려가볼 생각은....전혀 안납니다. 아직 70%도 못돌아본거 같습니다. ㄷㄷㄷㄷ
서쪽의 전투를 지휘하던 서장대와 서장대에서 도시와 강을 바라본 풍경입니다.
서장대는 다른 곳보다 경사가 급하여 수비하기 용이한 위치였을것으로 생각됩니다. 서장대에서 너댓분이 앉아서 음식을 먹고있으셨기 때문에 하단 부분은 제외하고 촬영되어 조금 아쉽습니다...
서장대에 올라서는 길에 보이는 호국사입니다.
6.25 전승비입니다. 그 옆에는 3.1절 독립운동 기념비가 위치해 있습니다.
제가 다녀온 8월 초에도 헌화되어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서장대로부터 진주 박물관을 향해가는 길에 보이는 박물관 부속 건물들과 뒷길의 모습입니다. 엄청 한적한 곳이였기 때문에 저 혼자만 세상에서 분리된것은 아닌가 하는 망상을 품게까지 합니다. 이 곳에 발길을 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도 합니다.
끝으로 진주성도 마음같아서는 2개 정도로 나눠서 포스팅을 하고 싶었지만, 워낙 밀려있는 여행지가 많아 하나로 구성해서 사설은 줄이고 줄여봐도 이렇게 스크롤 압박이 생겼습니다. 그 전에 포스팅한 진주박물관과 나중에 포스팅을 하게 될 촉석루와 의암, 그리고 임진대첩 계사순의 단까지 합치면 총 4개의 포스팅입니다.
그래서 진주의 필수적인 여행코스는 진주성이라고 단언컨대 말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볼것이 많고 이야기할것이 많은 곳은 제가 다녀본 여행지중에 손 꼽을 수 있으니 추천을 안할래야 안할 수 없는 우리 나라의 중요 관광지입니다.
추천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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